정재연의 탈역사적 공간에 대하여

전진성 (역사학자. 부산교대 교수)

 

공간이 기억을 담고 있다는 믿음은 더 이상 우리시대의 일반적 체험에 합치되지 않는다. 공간은 더 이상 과학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찬미했던 “지속성의 화석”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을 늘 불안정하게 만드는 변화의 촉매제로 기능한다. 과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머물 보금자리가 남아있는가? 늘 정처 없이 떠도는 우리의 산만한 기억들이 민족사의 터전이나 세계사의 무대에서, 아니 조상님의 넋이 깃든 고향 산천에서나마 응당한 지분을 얻을 수 있을까?

정재연은 끊임없이 기억을 비켜나가는 공간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나선 예술가이다. 소위 ‘공공장소’가 표방하는 공식적 메시지와 제도화된 기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잃어버린 기억의 편린을 ‘되짚어간다(retrace).’ 그녀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고자 자신의 오감에 각인되어있는 과거의 흔적들, 한마디로 몸의 기억을 탐색하고 재현하고자 애쓴다. 그녀의 작품세계가 ‘장소특정적 미술’로 범주화될 수 있다면, 해당 장소의 공공적 가치를 중시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가치를 허물어버리는 고유의 물질성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작업노트에서 고백하는 “이데올로기의 상징과 기호들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 혹은 역사의식의 부재가 탄로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란 실로 예술적 무능력의 고백이기는커녕 그녀가 공간을 아예 색다르게 전유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공간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의 촉매이자 그 결과이다. 공간은 늘 특정한 기억 내지는 관념, 이데올로기에 의해 여타 공간들과 차이를 갖게 됨으로써 비로소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얻는다. 예컨대 서양은 후진적인 동양과의 거리를 통해,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격차를 통해, 강남은 낙후된 강북과 비교됨으로써 비로소 제자리를 얻게 된다. 공간은 이처럼 상대적이지만 동시에 독자적이다. 기억이 변할 때 공간은 그에 맞추어 변화할 것을 요구받지만 나름의 관성에 따라 변화의 요구에 불응하며 자주 마찰을 빚는다. 공간은 기억을 분열시키고 말끔한 재조정을 방해함으로써 자신의 독자적 권리를 얻는다. 공간은 자체의 물질성을 통해 오히려 거꾸로 새로운 기억을 자극한다. 이렇게 볼 때 공간이 원래부터 주어져있으며 우리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발상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근대적 역사관의 소산일 뿐이다.

공공장소를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이 능청맞게 사유화하는 정재연의 설치작품들은 그곳을 휘감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장막을 과감히 벗겨내어 공간 그 자체의 생명력을 되살아나게 한다. 그녀의 초창기 작업에 속하는 「뚫어질라」, 「하이드파크의 연애편지」 등은 그 익살스런 면모를 괄호치고 본다면, 이후 작업들에서 이어질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의미심장하다. 공공장소에 대한 사적(私的) 개입은 위압적이거나 냉랭했던 공간을 나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내밀한 공간으로 순식간에 탈바꿈시킨다. 물론 그곳은 나만의 공간은 아니다. 관람자의 반응을 기대하고 민감하게 주시한다는 점에서 그곳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만나는 경계선에 가깝다. 그녀가 귀국 후에 참여한 「오프닝 프로젝트」는 적어도 작가 개인의 발전도상에서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간의 담을 허물려는 문제의식을 물리적으로 실체화한 사례로 보인다.

작가의 작업노트에 표명되어있듯이, 정재연의 설치작품들은 사회적 장벽을 허문 소통의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창조한 것은 사실상 소통보다는 분열의 공간에 가깝다. 마치 일상의 노동처럼 시멘트 블록을 이리저리 옮겨놓았던 런던에서의 일련의 작업들은 실로 소통행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유기적인 구조물이 되지 못한 채 공간을 부유하는 벽돌들은 오히려 폐허를 연상시킨다. 의도적이지는 않더라도 그것은 역사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폐허의 잔해를 오가는 하릴없는 노동처럼 확고한 정박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역사, 이른바 ‘탈역사(posthistoire)’의 그림자가 그녀의 작품에 짙게 드리워져있다.

한 때 청년 지식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주의 체제가 허망하게 몰락하고 자주독립의 열망을 품고 탄생한 신생국들이 대부분 옛 식민통치보다도 더욱 극악한 독재의 공포와 환멸로 귀결되었으며 가장 합리적으로 보였던 대의민주주의마저도 대표성의 위기를 맞이한 전 지구적 상황 속에서 모든 공식적인 이념과 정당성의 체계는 역사적 후광을 상실해버렸다. 영광스러운 과거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런던의 유서 깊은 왕립예술학교의 문 앞에서 행한 「입구와 출구(Way in & out)」의 퍼포먼스는 이와 같은 몰락과 더불어 그에 수반되는 재현의 위기를 암시한다. 그녀는 우리시대 예술가의 고충을 작업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자신을 대변해주는 편리한 껍데기를 얻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미증유의 상황 속에서 익히 알려진 공공장소를 개인적 몸의 기억에 의존하여 ‘되짚어가는’ 작업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정재연 작가가 「Retrace」와 「Lost corner」에서 재현한 옛 중앙청의 기억은 공식적 역사와 지극히 개인적인 아련한 이미지의 추억 간에 노정되는 균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제총독부청사와 중앙청(국립중앙박물관) 사이에 빚어진 역사 자체의 균열을 드러낸다. 원래부터 그 장소의 기억은 결코 순전히 개인적일 수만은 없었다. 내 몸의 감각은 이미 그 건물이 체현하고 있던 서구적 역사성 – 역사주의 건축 – 에 의해 굴절되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원래’ 그곳을 점하고 있던 옛 왕조의 법궁에 대한 기억을 말살하고 들어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 기억은 어차피 ‘원래’의 것이 아니었다. 작품제목과는 달리 나의 기억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부재하는 것의 망각에 기초하고 있다. 정재연이 창조한 공간의 이미지는 지극히 ‘탈역사’적이다.

공간은 역사의 범주적 조건을 제공하지만 끊임없는 사회 · 정치적 변화를 매개하는 가운데 그 자체로 역사성을 갖는다. 공간은 인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사태와 상이한 맥락들을 공시적-구조적 관계의 망으로 엮어내는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적극적 동인이다. 따라서 우리가 관계하는 공간은 늘 인간화된 공간, 다시 말해 정치권력에 의해 포섭되고 재편됨으로써 역사적 변천을 겪어온 공간, 이른바 ‘노모스(nomos)’이다. 혼돈된 우주(chaos) 안에 조화로운 우주(cosmos)가 깃들게 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장소애(topophilia)’를 갖는 것이야말로 본원적인 인간존재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철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어느덧 우리는 ‘비장소(non-place)’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간적 분업을 토대로 한 불평등한 발전, 이에 따른 자본과 노동의 이동 그리고 국경 분쟁, 이민, 투어리즘 등은 공간을 안온한 보금자리나 기억의 장소가 아니라 다층적이고 빈번히 모순되는 사회 · 정치적 과정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사회학자 마뉘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이 지적했던 소위 ‘유동 공간(space of flows)’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역사적 정체성을 더는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우리는 이 요지경으로부터의 출구를 가장 원초적인 ‘자리’인 몸의 기억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철학자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표현을 빌면, 몸은 자아가 거처하는 “자리”로서 “영혼의 향토이자 여타 모든 공간의 모형”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몸도 더 이상 확고한 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엄혹한 현실이다. 현대미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몸과 공간의 관계를 탐색해왔다. 욕조나 마루, 방 같은 집 안의 빈 공간을 주물로 뜨는 작업을 통해 집과의 물리적 연계를 박탈당한 신체를 주제화한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집」(1993)이나 자신의 몸을 랩으로 싸고 석고를 둘러 스스로를 거의 생매장시킴으로써 몸의 흔적을 조각으로 떠낸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북쪽의 천사」(1998) 등은 우리의 몸마저도 더 이상 제자리를 확보하기 힘든 ‘탈역사’ 시대의 진상을 증언한다.

공간예술가 정재연의 작품들은 탈역사적 공간과 몸의 기억에 대한 깊은 고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보편적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지만 그녀의 고뇌가 한층 더 깊은 것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억누르고 있는 모국의 역사적 하중 때문일 것이다. 미술관의 담을 허물고 애써 되찾으려했던 건축가 김수근의 마로니에 공원조차도 어차피 ‘원래’의 것은 아니다. 아련한 추억은 어차피 식민지 시절의 기억을 연장한데 불과하지 않은가. 결국 출구는 오래도록 우리에게 확고한 정체성과 재현의 준거를 제공했던 역사의 ‘외부’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모든 현재를 과거의 필연적 결과로 자리매김하는 동일성의 악무한으로부터 벗어나서 공간과 기억 사이에서 분열과 모순을 드러내고 기꺼이 사라지는 매개가 되는 수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