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능력

우아름(미술비평)

 

정재연의 작업은 종횡무진하다. 그는 연속된 주제와 매체 속에서 앞으로의 작업의 길을 안정적으로 취하기보다는 흥미를 유발하는 대상이나 거슬리는 상황, 갑자기 의문이 들게 하는 관습과 같이 작업의 현재 시간 속에서 발견한 주제에 맨몸으로 나아간다. 던져야 할 질문을 던진다. 이를 형상화하는 데 필요한 기법이나 기술이 있다면 그때그때 익힌다. 그래서 그가 선택하는 주제와 매체와 재료는 예측 범위 밖에 있다. 나는 정재연 작가를 2016년 한 예술학교의 레지던시에서 만났다. 학교의 교육 인프라가 작가들에게 닿도록 하는 것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골자였다. 이 시스템 속에서 정재연은 처음으로 판화의 기법을 익혔다. 일 년의 시간이 흐른 후 결과보고전에서 그가 선보인 것은 동판화로 재현한 기억 속의 구)중앙박물관 로비였다. 그런가 하면, 2011년에는 단지 레지던시에 적응하기 위해 시멘트 블록을 만드는 루틴을 작업 삼은 일도 있다. 시멘트가 몰드에 달라붙어 망치기 전에 작업실에 돌아와 적절히 조치를 취해야 했으므로, 이 작업은 자신을 레지던스(거주) 상태로 자신을 붙잡아두는 수행적인 작업인 셈이다. 이렇게 만든 시멘트 블록은 입주 기간 동안 작가의 작업 공간에 쌓여 지면의 높이에 변화를 일으켰다. 이 작업들은 작가의 주요 작품은 아니겠으나,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단단한 걸음걸이를 느끼게 해 준다. 그렇다면 그 추동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는 힘

정재연은 타국의 낯선 환경에서 작업의 여정을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과 관계 속에서 이제 자신의 것이라 부를만한 작업의 길을 발견해야 했다. 당시 작가가 선보인 작업들은 특정 장소와 시간 조각에 배어있는 모순을 확장해 펼쳐내는 모양새를 띤다. 그것은 이방이었던 작가가 선택하고 다루기에 용이한 주제였을 것이나, 간결한 위트와 자신을 드러냄에 주저하지 않는 한결같은 기세에서 작가 특유의 재치와 용기가 엿보인다. 가령 〈Flags〉(2010)에서 작가는 당시 머물던 집 창문 국기 게양대에 동(남)아시아 국기를 번갈아 가며 게양해 촬영한 사진 연작을 통해 아시아 여성의 출신에 관한 주민들의 너무도 직접적이어서 다소 무례한 호기심을 그대로 되돌려 응답했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쓰는 용어는 공적 개입(public intervention)이다. 초기작에서 주요한 기제는 특정 공공장소의 활용과 환경을 둘러싼 결정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었다. 공공장소의 환경과 사용자 범주, 활용 방향을 결정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러한 권한의 시스템 속에서 공공의 장소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 수혜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공적 공간의 가치를 두고 교차하는 입장의 차이들이 떠오른다. 아주 사적인 사랑과 갈등의 내용이 담긴 연애편지를 지하철 역사나 공원에 버젓하게 전시하여 개인의 이야기를 공공장소의 틈바구니에 삽입한다든지, 참여하게 된 레지던시 공간들의 사용성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이 초기의 주요 작업들이다.

〈What happens here〉(2010)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당시의 작업이다. 레시던시와 같은 빌딩에 있던 사기업에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동 휴게실에 탁구대가 비치되어 있었다. 작가는 탁구대를 자신의 작업실 공간으로 옮기고 원래의 자리에는 붉은 조명을 쏘았다.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이 작업의 경위는 이렇다. 당시 이 공간은 엘리베이터조차도 보안카드가 있어야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된 제한적인 공간이었다. 오프닝 당일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초대장을 지참한 관객들만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가의 작업실은 가장 공공적이면서도 폐쇄적인 공간이 된다. 탁구라는 캐주얼한 모두의 놀이가 가장 제한적인 권위를 지닌 자에게만 허락되는 놀이로 역전되는 순간이다. 플로렌스 트러스트 입주 기간 선보인 〈세인트 세이비어스 이머전시 프라이빗 쉘터〉(2012)는 지하로 연결되어 보이는 두 개의 입출구 설치물과 고급형 개인전용 대피소의 입주자를 찾는 광고 영상으로 구성한 작업이다. 이 레지던시는 본래 교회로 지어졌으나 현재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빈자와 위험에 처한 자들에게 은신과 안식의 장소로 제공되던 공간이 오늘날 예술가라는 소수의 특정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되는 것은 과연 공공적인 것인지 질문에 부친다.

장소의 사용과 결정 권한을 둘러싼 꼬집기의 맥락은 귀국 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대표적인 작업이 아르코의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오픈콜에 선정되어 협업으로 선보인 〈오프닝 프로젝트〉(2013)와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입주 시기에 선보인 〈Dialogue〉(2014)이다. 〈오프닝 프로젝트〉는 아르코미술관을 미술관 뒤편에 세워져 행인들의 시선을 차단하던 높은 적벽돌 가벽을 둘러싼 협의의 공동체를 운영하고, 그 결과로서 가벽을 허문 프로젝트다. 꾸준히 발표해 온 일련의 개입 행위는 〈Dialogue〉에서 가장 간결하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풀린다. 테미예술창작센터는 대전광역시가 원도심을 문화 예술을 통해 활성화 및 재생하기 위해 테미도서관을 활용해 조성한 시각예술 레지던시다. 작가는 입주 기간 동안 이곳이 여전히 도서관인 줄 알고 방문했다가 실망하고 돌아가는 시민들을 보면서 과연 이 공간이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이 얼마나 적정한 공공성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금 꺼낸다. 당시 레지던시에서는 임시방편으로 예술 도서 자료실을 꾸려 시민에게 오픈했는데, 작가는 이 도서관 공간에 놓인 테이블과 똑같은 규격의 2인용 테이블을 제작해 설치하고 착석 순서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조도로 테이블 중앙 조명의 조도를 정할 수 있도록 한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였다. 〈Dialogue〉는 간결한 제스처로 풀어낸 작업이지만,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가장 벼리어진 감각의 차원에서 작가의 질문을 곱씹어보게 한다. 그리고 작업의 궤적은 이쯤에서 변곡점을 맞이한다.

익숙한 곳에서 다시

2016년부터 작가의 공적 개입의 무대는 보다 비물리적이고 정신문화적인 것으로 확장 이동한다. 개인에게 덧입힌 국가 정체성이나 관습과 교육으로 인해 익숙해진 역사적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들을 비틀어 보며 수면 아래 다양한 입장들의 차이를 노출하는 것이다. 초기 작업과 비교했을 때 2016년 선보인 〈Retrace〉(2016)로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의 작업에는 두 가지 주요한 변화가 있다. 작업이 장기적 연구로 연속화한 것이 첫째 변화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레토릭으로 위트나 역전 대신 병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정재연 작가의 작업에는 연구적 골똘함이 고이고, 관객에게는 작업에 함께 배치된 서로 다른 요소들을 연결해 보는 고찰을 요구한다.

시작은 사소한 계기였다. 작가 자신이 예술교육을 받았던 모교에 설립된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십수 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사용 권한을 얻은 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검색하면서,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는 지난날 자신의 대출목록을 마주하게 된다. 풋내기 학생에게 나름의 미학을 형성하게 해 준 도서 목록을 다시 마주하면서, 작가는 자기 미감의 형성 궤적을 되밟는다. 그러던 중 판화 작업실에서 프레스기를 발견하고 지금은 허물어져 사라진 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로비의 모습을 찍어내기로 결심했다. 왜 하필 그곳이었을까. 작가에게 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로비는 사적인 미감의 원형으로서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이미지였다. 식민 지배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허물어뜨려진 장소이자, 국가적 차원의 의지적인 반기억의 파괴 이벤트가 행해진 장소다. 그러나 이런 모든 거대 담론을 걷어내고 건물 자체만을 본다면, 고결한 자재와 고아한 형태는 아름답다. 작가는 자신의 미감의 원형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로비 이미지를 건축 당시 레퍼런스가 되었던 유럽의 건축 이미지들과 함께 배열하고, 벽면에는 예술교육을 받던 시절 도서관에서 빌렸던 도서대출목록을 레터링했다. 자신이 미술 제도 안에서 교육받던 시기의 독서 목록과 당시 일본이 답습했던 식민주의 건축양식의 레퍼런스를 병치함으로써 교육과 역사라는 커다란 이데올로기 틈바구니에서 사적인 미감이 생성되는 과정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후 2회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Retrace〉의 ‘추적’ 작업은 보다 심화된 연구 과정을 밟으며 보다 공적인 담론으로 나아간다. 개인전 《로스트 코너》(2018)와 《로스트 코너-메모리 아카이브》(2019)에는 조금 다른 모드로 이 주제에 다가섰던 작가의 리서치 궤적이 드러난다. 《로스트코너》에서는 〈Retrace〉에서 하나의 중심 이미지로 드러내었던 중앙박물관의 여러 건축적 세부를 프로젝션하는 방식으로 기억의 편린을 이미지적으로 공간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로스트코너-메모리 아카이브》에서는 건축물의 파괴라는 국가적 결정의 이면에서 다른 생각을 가졌던 개인들을 인터뷰해 다큐멘터리화하고, 이를 개인의 사적인 기억을 담은 영상 작업과 병치함으로써 하나로 주조할 수 없는 기억과 생각의 갈래들을 노출했다.

〈k-93〉은 〈Retrace〉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작업과 심화되는 리서치 중에 발견한 모티프다. 이번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철거가 시작되었던 1995년의 뉴스에서 그 단초를 발견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기되었다고 알려졌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본이 박물관에 언제나 잘 보관되어 왔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국가기밀누설죄를 물어 대동여지도 목판을 파괴했다는 소문은 일제강점시기에 출판된 『조선어 독본』에서 발원한 허구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파괴와 목판의 파괴는 역사라는 무형의 공공지가 어떠한 목적의식 아래 주조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공적인 순간이다. 중앙로비와 목판을 새긴 두 점의 판화 이미지는 그게 정말일까? 라고 묻는 작가가 내미는 하나의 증거다.

질문의 능력

정재연 작가의 작업은 항상 변화 중인 형세다. 작가가 하나의 주제 아래 줄 세울만한 작업을 고민하기보다는 언제나 속지 않는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질문을 거침없이 던진다. 질문의 능력이다. 기꺼이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는 힘, 휩쓸리지 않는 시선이 일견 종횡무진해 보이는 그의 작업 줄거리를 이어준다. 나는 작가가 줄곧 유지해 온 모험적 태도에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다가, 이 상태를 유지해온 힘이야말로 프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정재연은 프로-아마추어리스트다.

신작의 방향을 물으니 디지털 지도를 모티프 삼아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디지털 지도에서 독도의 표기명이 접속 국가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명칭으로 표기되는가를 보여주는 영상 작업을 제작해, 〈k-93〉의 목판화 이미지와 나란히 배치하려는 것이다. 가장 객관적인 정보라 믿어지는 지도조차 입장과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일 테다. 이 또한 작가 자신으로서는 역사의 허구성을 겨냥하는 것이겠으나, 이제는 가상의 공간으로 떠나는 작가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역시, 라고 되뇌게 되는 것이다. 이후로는 또 어떤 대상을 발견하게 될까? 모험에 떠나는 기사가 가지고 돌아올 전리품을 기다리는 심정이 되고야 만다.